하나님은 참되십니다. 참되다는 말은 진실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참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그가 참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속이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그가 참되신 분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참되심을 아는 사람은 그의 말씀이 참됨을 믿을 것이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고,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참되심을 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참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참된 것이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은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습니다. 참된 사람이 한 사람 있다면 그는 참되신 하나님의 품속에서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를 정죄하고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살리심으로써 그가 참되다는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복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시고 그 날에 안식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 역사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으십니다.
예수께서는 복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고, 복 있는 사람은 애통하고, 복 있는 사람은 온유하고, 복 있는 사람은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복 있는 사람은 긍휼히 여기고, 복 있는 사람은 마음이 청결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1~8). 다시 말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애통하고, 그런 사람이 온유하고, 그런 사람이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그런 사람이 긍휼히 여기고, 그런 사람의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성결(聖潔)’이란 말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성결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혼란과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성결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가나안 땅의 예루살렘까지 이르는 동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계명을 따라 성결한 삶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들이 받은 하나님의 법은 육체의 예법만 될 뿐이었습니다(히 9:10).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혹은 ‘천국’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두 단어는 구약성경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육체를 성결하게 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는 심령을 성결하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어느 종교에나 윤리와 도덕이 존재하는데 그 내용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하는 계명은 어느 종교나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결한 삶을 추구한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죄 지은 사람이 돌에 맞아 죽거나 저주 받아 멸망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무사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도 성결한 삶을 위해서 수도승처럼 육체의 연습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육체의 훈련이 아닙니다. 육체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오늘 굳게 다짐할지라도 내일이면 또 다시 쓰러지는 것이 육체입니다. 육체가 진정으로 성결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숨이 끊어져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을 때입니다. 육체에 숨이 붙어 있는 한 죄와 허물은 자꾸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를 해달라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은 보기 흉할 정도로 온몸에 딱지가 더덕더덕 붙어 있었습니다. 얘기를 들어 보니 성결하기 위해서 매일 다섯 번씩 목욕을 하는데 피가 맺힐 정도로 피부를 문지르는 바람에 온 몸이 딱지 투성이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그뿐 아니라 남편이 부부 관계를 요구할 때마다 “사단아, 물러가라!”하며 남편을 더럽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집안에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성결이 무엇인지를 크게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명은 육체의 예법만 되기 때문에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킨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가진 진리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히브리서 8장 10~11절은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히 8:11)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의 성결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육체를 철저히 훈련하여 성결한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서는 살인과 도적질과 간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1~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으로는 살인과 간음과 도적질을 일삼으면서 겉으로는 깨끗한 척 하는 사람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특히 비판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라는 말이 가진 뜻은 ‘외식(外飾)’이 아니라 ‘성결(聖潔)’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결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여!’하고 그들을 꾸짖으셨는데 이는 ‘외모로만 성결한 바리새인들이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겉은 깨끗하나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한 회 칠한 무덤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3:27).
어떤 사람들은 그런 예수를 육체의 성결을 부정하는 사람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7~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육체(肉體)와 영혼(靈魂)의 존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육체는 ‘나’라는 존재가 입고 있는 옷과 같은 것이고 영혼이야말로 진정한 ‘나’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곳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육체는 아무리 거룩하게 수양할지라도 죽는 날까지 우리를 끝없이 실망시킬 뿐입니다. 육체의 성결을 가지고서는 결단코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하루에 열 번씩 목욕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의롭게 될 수는 없습니다. 방에 틀어박혀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죄 지을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할지라도 그것으로 자기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욕심을 억제하고 착한 일만 하면서 살지라도 그것으로는 하늘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8절은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훈련은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유익을 주지만 심령의 변화는 사람이 육체를 떠난 이후에도 유익을 준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되신 하나님의 품 속에서 독생하신 의인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의(義)가 없는 죄인입니다. 시편 51편 5절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어떤 행동을 하기도 전에 이미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죄사함을 얻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치셨습니다. 그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의롭다는 사실을 보증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고후 1:22). 오늘날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신 것은 물건을 사면 영수증을 받는 것처럼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은 사실에 대한 보증을 얻은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람들은 믿는 사람을 만나면 ‘네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행 19:1) 하고 확인을 했습니다. 이는 ‘네가 믿는다고 말을 하는데 과연 네가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느냐?’하고 묻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나는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하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증인이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증거이고, 이러한 증거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거함으로써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증인(證人)’이란 특별한 직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요, 이에 대한 증거가 있으니 곧 내 안에 계신 성령이시다.’하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증거를 많이 하는 사람은 영혼에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믿는 자의 증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천사들이 부러워하며 박수를 보내는 일입니다. 자신이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증거가 없는 자요, 그와 같이 자기 신분의 변화에 대하여 침묵하는 사람은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종교가 아니라 체험의 신앙, 즉 보증이 있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의인이 된 것은 죄를 짓지 않아서, 혹은 성결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훈련과 수양도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많은 유익을 주지만 그것으로는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이러한 한계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신 다음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의 앞에 나아와 회개하는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심령의 청결은 우리 자신의 어떤 행위와 노력으로는 얻을 수가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음으로써 그와 연합했습니다. 우리 자신은 성결하지 않고 아무 의(義)도 없지만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공로를 입고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3장 14절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는 본래 의인이시고, 나는 의롭다 함을 받은 의인이다.”하고 담대하게 증거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훼방하기 위해서 혼란을 줄 것입니다. “야, 네가 어찌 의인이란 말이냐? 너 같은 사람이 의인이면 세상에 의인 아닌 사람 아무도 없겠다. 넌 정말 네가 의인이라고 생각하느냐?”마귀의 이와 같은 유혹 앞에서 믿음이 흔들린다면 그것이 바로 시험에 든 것이고, 타락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은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마귀의 역사는 사람들의 믿음을 혼란케 하고 마침내 그 믿음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귀의 역사를 이길 수 있는 길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다.”하고 증거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목 베임을 받기까지 증거를 가진 자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계 20:4~6).
당신은 자신이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있습니까? 증거가 있다면 간증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입으로 시인하되 목 베임을 받기까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를 말하다가 죽는 것을 순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다가 목 베임을 받는 것도 순교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그와 같은 증거를 할 수 있는 능력과 기쁨과 충만함이 없다면 이는 큰 타락입니다. 육신의 행위로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기쁨으로 그 사실을 증거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25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성결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복 있는 자는 그리스도가 그의 안에 있고, 복 있는 자는 심령이 성결합니다. 우리가 진정 복을 받은 사람이라면 자기 심령이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39절은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 사함을 얻으면 하나님께서 보증으로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이사야 1장 18절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가 아무리 무거울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상의하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리 피부가 상하도록 몸을 닦을지라도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자만이 심령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고, 그런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은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침례의 의미는 육신의 더러운 것을 제하는 데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우리 심령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인으로서의 수양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자신의 행실을 가다듬는 일에 힘을 쏟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그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들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의(義)는 하늘에 들어가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가나안까지 가는 동안 율법을 따라 성결을 삶을 살았고 이것이 그들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에 대한 비유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심령을 성결하게 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1~25)라고 고백했습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시고 그 날에 안식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말씀이 거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6)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요 1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육안으로는 하나님을 뵙지 못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았는지 예수께서 이미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를 의롭다고 인치셨고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나, 곧 내 영혼아, 복을 받자!
나, 곧 내 영혼아, 복을 받자!
나, 곧 내 영혼아, 복을 받자!